COLUMNIST

혼자 살았어도 외롭지 않았네 11

그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나는 언제나 남들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하는 편이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겠다는 속보이는 욕심도 있었지만 시카고 북부 크지 않은 은행에서는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야지만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제 멋대로 굴러가는 법인가? 어쩌면 그들이 내뻗는 승진의 손길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나 실력에 비해 훨씬 앞서가고 있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은행 꽁생원으로 첫 출발한 후 불과 18개월도 안된 사이에 대리와 과장을 지나 부사장보(Assitant vice president)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나를 그렇게까지 빨리 승진시킨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 선임 부사장(Senior vice president)이었다. 그런데 그가 보이질 않았다.

모두들 출근을 하고 아침 커피를 마시고 손님들을 맞은 지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언제나 내 책상 바로 뒤에 앉아 내가 손님들과 나누는 대화를 다 듣는 위치에 있었다.

미국 은행의 선임 부사장 정도되면 그 나름대로 제법 넓은 독방에 여비서 한명이 잔심부름을 하는 정도의 위세는 지니고 있음직했다. 그러나 그가 원래부터 겸손한 탓이었는지 그에게서는 위세리든가 거만스럽다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아침부터 나타나질 않았다. 다들 바빠서 허둥대던 아침 나절이 지나 점신 시간쯤 되어서야 그가 어젯밤에 체포되어 구치소에 들어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귓속말로 옮겨지고 있는 소문들을 종합해보면 그가 은행 규정을 어기고 손님으로부터 돈을 받고 불법 거래를 눈감아 주다 사직당국에 체포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소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세상에 법없이도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손에 맞으면 맞았지 그가 먼저 주먹으로 다른 사람을 칠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뒤쪽에서 철저하게 감시하는 평소 모습으로 보아 은행돈을 몰래 빼돌릴 수 있는 위인도 안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는 부정부패가 개입될 수 있는 대출담당 선임부사장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왜 붙잡혀 갔을까. 나는 도채체 알 수가 없었다.

며칠 지난후 시카고에서 발간되고 있는 시카고 트리뷴과 시카고 선타임즈는 대문짝만한 글씨로 사건의 전모를 보도하고 있었다.

'마피아는 아직도 시카고에 건재하고 있다'는 제목이 우선 한 눈에 들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 가운데 하나라는 오헤어 공항 뒤편 맨하임 로드(Manheim Road) 길에 들어서면 줄지어 들어선 호텔을 지나 술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선타임즈 보도에 의하면 그 가운데 한 술집을 미 연방 수사국 직원들이 경영하고 있었다. 이른바 함정수사의 그물을 친 셈이다. 위장 술집을 경영하게된 이유는 시카고 지역에 깊이 박혀있는 부패 정치인들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목적 때문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연방수사국이 위장 술집을 경영하면서 밝혀낸 부정부패 방지법위반 사항은 수백건을 넘는다는 보도였다.

말하자면 시카고 시청 직원, 일리노이주 정부 공무원 또는 그들의 업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정치인들을 모시고 술을 사든가 매춘을 알선했다든가 하는 사람들과 관련자들을 포함한 숫자였다.

나는 그같은 선타임즈 기사를 읽어가면서 그는 결코 그같은 엄청난 정치적 음모에 빠져들었을 리가 없다는 확신을 더욱 굳혀갔다.

그런데 그가 잡혀가게 된 범죄혐의를 모두 합쳐보아야 1,000달러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푼돈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신용카드 결제 규정에 따르면 손님이 신용카드로 판매된 결제액수를 은행에 입금시킬 때 봉사료가 판매액을 훨씬 초과하게 되면 입금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 상사는 그 규정을 어기고 그냥 입금전표를 허락해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걸려든 셈이다

상사는 편의를 봐준 사람들과 함께 점심, 저녁 식사를 가끔 같이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그들이 입금을 받아줘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봉투에 넣어 건네준 돈들을 받았고 이 액수는 통틀어 보았자 1,000달러도 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은행이 주정부 인가은행(State Chartered Bank)이 아니라 연방정부 인가은행(National Chartered Bank)이기 때문에 연방법 위반범으로 기소된 셈이었다.

그는 정말 억울한 희생자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억울한 희생자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가 받았다는 접대비용의 액수가 적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야 말로 돈을 크게 벌어 엄청난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또는 버는 돈보다도 씀씀이가 많은 허황된 삶을 살고 싶다거나 하는 돈 욕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그가 가지고 있었던 꿈이란 아들 딸을 제대로 교육시켜 정직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키워 보겠다는 소시민으로서의 꿈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연방수사당국(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이 뿌리뽑겠다며 눈 부라리고 찾던 일단의 범죄 집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사실 가까운 사람끼리 편리를 봐준다(cronyism)거나 또는 어떤 부정부패를 저지르기 위해 양심을 판다(corruption)거나 아니면 공모 내지는 음모에 가담하는 것(conspiracy) 따위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그가 마피아의 조직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음에도 결국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었다. 그가 두해 동안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다시 시카고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그는 사회적으로 적응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미 전과자의 낙인이 찍혀버린 상태에서 페인트공 등 잡역을 전전하다 몇 년 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니까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를 알아맞히는 모임(You bet your life club)에서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이 되어버린 셈이다

내 사랑하는 친구 박석희 신부가 마피아의 도시 시카고에서 살고있는 나를 처음 찾았을 때가 바로 나의 상사가 감옥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세상은 아주 완벽한 것처럼 돌아가고 있었고 나는 이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어떻게 불완전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을 제거해주지 않는 한 어쩌면 불안은 급기야 공포로 발전해갈지도 모른다(Progressive symtom moving from unstable to fearful)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때 누군가의 확신에 찬 확인이 필요했었다

"내가 보기에 그분은 내가 나중에 가난해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공포로부터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거야" 그러니까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면 어떻게 하나'(The fear of poverty)라는 걱정이 더 큰 문제일 것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때 "넌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신부니까 할 수 있는 말이겠지?"라며 반발하고 싶어졌다. 그때 내 친구는 이렇게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잖아?(The greatest force is the intangible). 그러니까 부자란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돈이라든가(Financial) 재산이라든가 하는 것들 뿐 아니라 정신적(Spiritual) 또는 도덕적(Moral)인 기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쌓아가야 하는 것아닐까?"

내 상사가 감옥에 가게된 밑바닥 이유에는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도덕적 지혜(Road to wisdom)가 부족했던 것같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세상을 살다가 누가 먼저 죽게될 것인가를 측정하는 기준도 결국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재어볼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지혜(Intangible wisdom)로 재어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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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3, 2015, 10:2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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