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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았어도 외롭지 않았네 12

그가 감옥에서 풀려났다.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를 알아맞히는 모임'은 자유 세계로 귀환하는 그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파티를 열기로 했다.

그는 늙어보였다. 그는 또 병든 사람처럼 수척해보였다. 그는 돈도 없을 것임이 뻔했다. 두 해를 가옥에서 보냈고 또한 변호사 비용도 엄청 지불했었다.

아내도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 방법은 없었지만 단 하나뿐인 아들을 감옥에 있는 아버지 밑에서 더 이상 자라게 할 수 없다는 핑계였다고 한다. 아마도 재혼은 하지 않은 것같다는 소문이 났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평판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사람이 늙고 병들고 돈없고 또 마누라까지 없는데다 그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조차 싸늘하다면 그야말로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를 알아맞히는 모임'의 첫번째 희생자가 누가 될 것인지는 뻔한 일이었다.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풍요스럽게 생각하고 성장하는 길'(Think and grow rich)이라는 책에서 사람이 바르게 생각하고 알차게 성장하는 데 앞을 가로막는 6가지 귀신들(How to outwit the six ghosts of fear)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책에서 6가지 귀신은 가난에 대한 불안감(The fear of poverty), 남들의 평판에 관한 불안감(The fear of criticism), 병들고 약해지는데 대한 불안감(The fear of health), 가까운 사람을 잃어버릴까하는 불안감(The fear of loss of love of someone) 늙어가는데 대한 불안감(The fear of old age), 죽음에 대한 공포감(The fear of death) 등이라고 분류했다.

설령 그것이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며칠전 감옥으로부터 풀려난 이탈리안 출신 나의 전 보스야말로 그 틀에 가장 가깝게 닥아간 사람인 것같았다.

그러니까 늙고 병들고 돈 없고 마누라까지 떠난 처지에 남들의 평판마저 좋지 않다면 6번째 귀신, 즉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남들의 평판'이란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다'라든가 또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든가' 하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남자들은 여자 문제에 관하여, 여자들은 남자들 문제에 관하여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어떻게 행동했느냐에 따라 평판의 기준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젊잖은 척 또는 아무리 깨끗한 척 겉으로 꾸미려 하더라도 자기 배우자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추론이었다.

흔히들 정치가들이 겉으로는 깨끗한 척, 돈을 받아먹지 않는 청렴결백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지만 뒤로는 돈거래를 주고 받는 더러운 정치인들의 행동이 있다. 그것을 심리학자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Hypocratic)라고 말한다. 또 흔히들 겉으로는 웃으며 친절한 척 하지만 뒤 돌아서서 욕하고 다니는 사라들을 이중인격자(Duplicity)라고 부른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규범의 가장 근본적이며 기초적인 가족관계에 있어서 진정한 사람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버릇으로 모든 인간 관계의 신뢰와 배신의 연관성은 아내나 또는 남편과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한다고들 한다.

만약에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에 대하여 사람들의 일반적 평판이 나쁘다고 한다면 그가 맞이해야할 다음 단계는 죽음으로 가는 계단을 밟는 것이라고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를 알아맞히는 모임'의 나머지 세 사람은 굳게 믿고 있었다. 세 사람은 그를 위하여 이른바 홀아비 잔치(Widower's party)를 열어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나도 미국 생활을 꽤 오래한 편이지만 총각파티(Bachelar's party)라는 말은 자주 접했지만 홀아비 파티란 난생 처음 들어보았다. 그러나 설령 내가 한번도 그같은 파티에 참석해보지 않았다하더라도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은 마치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다.

'누가 먼저......'의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젊고 또 여성들로부터 언제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희랍 친구가 맡기로 결정했다.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관하여 느슨한 끈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런때일수록 '될데로 되라'는 비관적 태도보다는 '끝까지 잘해보자'며 낙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일 것이다.

며칠 후 벌어진 '홀아비 파티'는 싱겁게 막을 내렸다. 나머지 세 사람이 끝까지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희랍 친구가 모셔온 터키 출신의 배꼽춤 무희를 쳐다보면서 그 자신도 모르게 흐트러지는 자세를 보여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도 그는 별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값싼 유혹의 그물에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던 나머지 세 사람은 시계 바늘이 자정을 향해 달리고 있을 무렵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사랑의 냄새를 잃어버렸나' 유대인 친구가 첫마디를 내뱉었다. 아마도 그가 곧 세상을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예견했다. 그 유대인 친구는 오스트레일리아 미개지에 살고 있는 와찬디(Wachandi) 원시부족의 풍습을 말했다. 그들은 가을이면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는 전통 제사의식을 지냈다. 가을에 추수를 앞둔 남자들이 그렇게 깊지는 않지만 원형으로 땅을 파고 그 주위로 덤불을 올린다. 그것은 여성의 상징이다. 그리고 남자들은 길다란 창을 손에 들고 주위를 맴돌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것은 남성의 상징이다.

'누가 먼저......'의 세 사람 가운데 둘은 그가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남성의 욕구를 억누르고 있었던 결과가 그같은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희랍 친구의 설명은 달랐다. '나쁜 사람이 되기 싫은거야......' 아내가 떠나버린 상태에서 더 이상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는 설명이었다.

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그 욕망이 가져다준 어떤 과실(Fruitfulness)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성립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떤 과실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면 처음부터 욕망은 억제해야 하는 법이라고 희랍친구가 말을 이어갔다.

세 사람의 의견은 각기 달랐다. 사람이 늙고 병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없는빈털털이에게 아내까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면 이제 살아가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다른 사람들의 평판만은 좋게 가지고 가야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과 이제 죽을 날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뭐 그렇게 까지 남의 눈을 의식해야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두 가지로 의견이 갈라졌다.

나는 그가 좀 더 오래 살 것같았다. 아무리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들-예를 든다면 돈이라든가 건강이라든가 나이라든가 아내라든가 하는(Tangible)-보다는 마지막 남은 한 가지 즉 자긍심마저 잃게 된다면 그는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재산(Intangible)까지도 날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의 그같은 가느다란 바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달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내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후 시카고에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와 특별미사를 올렸던 내 친구 박석희 신부는 그 무렵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하는 질문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것같아! 사람은 어차피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내게 되면(Seperated) 혼자서만 남아있는 것같아(Isolated) 외로워하며(Lonely)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꺼려하며(Hatred), 근심걱정을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며(Stressful) 그리고 또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에 이르게 되는 경우(Suicidal)도 있게 될거야".

'나 속에 있는 나를 가난하게 해야겠지......'(Simplify yourself). 모든 것을 정말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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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 2015, 10:4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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