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IST

혼자 살았어도 외롭지 않았네 14

첫 번째 ‘총각 졸업식’이 실패로 끝난 며칠 후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를 알아 맞추는 모임’의 네 사람은 또 한번의 모임을 갖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총각 졸업식’이 아니라 아예 그와 남은 평생을 함께 할 여자를 찾아 짝을 맞춰주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렇다 그는 하나도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말하자면 사람들이 들어가기 쉽지 않은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출신이 아닌가.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명예의 전당이란 예술이나 운동 경기에서 남들이 따라하기 힘든 찬란한 열매를 맺었을 때 그 사람의 이름과 흉상을 모시는 곳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따라하기 힘든 공을 세웠다는 뜻이다.

평소에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이웃 사촌같은 이미지를 지녔던 사람이 어쩌다 실수로 감옥을 다녀온 것이 어떻게 자랑스러울 수 있을까만은 그래도 ‘누가 먼저....’에서는 속세로 귀환한 그를 환영하는 뜻으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날도 언제나 네 사람이 퇴근할 때마다 버릇처럼 들렀던 그곳은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곳은 희랍, 독일 출신 이민자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시카고 북부 로렌스와 웨스턴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그들은 자기들 나라의 색깔로 서로를 구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희랍 출신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국기 마냥 하늘색으로 된 간판들을 달고 있었고 독일 출신 이민자들은 짙은 고동색 간판을 달아 놓았다.

그들이 경영하는 사업체 이름도 각기 자기 나라의 잘 알려진 이름들을 따서 붙여 놓고 있었다.

그리스 출신들은 아테네라든가 알렉산드라 등의 이름으로, 독일 출신들은 프랑크푸르트, 본이라는 이름들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헬레나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듯한 식당 겸 술집이었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별다른 말없이 술잔을 연거푸 들이키고 있었다. 제법 독하기로 이름난 매탁사라는 희랍술이었다. 나머지 세 사람도 그의 눈치를 살피느라 죄없는 술잔만을 기우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좁은 마루 바닥에서는 어깨를 부딪쳐가며 춤추는 몇 쌍들이 불빛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몇 차례 술잔이 돈 뒤 그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아... 이거 큰일 났구나!” 평소 그답지 않게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누구도 선뜻 일어나 그를 붙잡은 사람이 없었다. 이번에도 실패한 셈이다.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만 번갈아 쳐다보며 이같은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당혹해하고 있었다.

“아니야 총각 졸업식으로는 부족한거야...” 한 친구는 아예 우리 세 사람이 적당한 여자를 찾아 그 친구가 사는 집으로 들여보내야 한다고 한발 더 나갔다.

이제 막 감옥행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그것도 처자식이 있었던 사람을 위해 ‘총각 졸업식’을 가져야 한다? 너무나 엉뚱한 발상이었지만 세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건 안 된다고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전혀 엉뚱한 발상이라고만 할 수 없는 측면도 갖고 있었다.

가끔 들려오는 소문에 그가 옥살이를 하고 있는 동안 그렇게도 현모양처 같았던 부인이 집을 나갔다고 한다. 그것도 단 하나뿐인 아들까지 데리고 어디로 간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집을 나갔단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비탈길은 언제나 어지러운 법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를 때는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하고 내려갈 때는 넘어질까 봐 조심을 해야 하는 법이다.

남편이 형을 마치고 나왔다면 이제부터는 조금은 쉬운 내리막길이 될 수 있을 법도 한데 그의 부인은 오히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야할 험한 오르막 삶이 이제부터라고 지레 짐작한 탓이었을까?

사실 사랑이라든가 결혼이라든가 하는 그 말 자체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일이다(It's a complex problem of love and marriage from euporia of failing in love to the accommodations and adjustments necessary for enduring marriage).

더구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혼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 것같다. 아마도 끝없는 인내와 어려움을 극복하라고 강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다 한번씩 감옥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게 아닐까? 모두가 다 선한 면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악한 면도 가지고 있으며(Have to admit that we can do evil as well as good that our nature includes weakness as well as strength) 또한 강인한 면, 연약한 면도 소유하고 있는 법이다.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밝은 면 뿐아니라 어두운 면까지도 다 드러내야 하는 법(Must unveil the dark side of the soul if we ever to be fully alive)이다. 그가 실형을 끝내고 속세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가 지니고 있었던 어두운 면을 드러낸 셈이므로 이제부터라도 햇빛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삶을 영위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를 위해 총각 졸업식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던 이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같았다. 그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는 것은 그가 혼자서는 견뎌낼 수 없는 어떤 슬픔을 껴안은 비탄(A grief) 때문인지도 모른다면서 나머지 세 사람이 그로 하여금 이같은 일들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Making a transitional amend)를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리게 되면 쉽사리 슬픔에 잠기게 마련이다(Sadness of loss of what you owned). 더구나 지금까지 마음과 몸을 비비고 함께 살아왔던 삶의 동반자를 잃게 되면 고독한 삶(Loneliness)을 지나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어떻게 하면 가까스로 이겨내고 다시 성장하게 될 수 있을까?라는 재기의 의욕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바람만은 살아 남는다’는 한 가닥 명줄처럼 잡고 늘어져야 할 것이 아니냐?‘라는 반문이었다.

사실 사람들의 삶속에서 잃어버리는 것 가운데 사랑했던 배우자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아픈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까 부부 관계를 연구하는 심리상담 전문 학자들조차 사람들이 경험하는 가장 두려운 스트레스가 배우자와의 헤어짐이라고 결론짓고 있지 않았을까?

비록 아내와 아들이 떠났지만 오랜만에 동료들이 베풀어준 총각 졸업식을 거절했던 그가 어떤 여자를 골라 억지로 그 집에 집어넣는다 하더라도 쉽사리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다.

오래전 베스트 셀러 작가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도 그의 역작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Think and grow rich)라는 책에서 인간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6가지 공포'(The six basic fear)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랑하던 사람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까닭은 아마도 인류가 동굴 생활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남자가 사냥을 나간 사이에 잃게 될지도 모르는 배우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어느 공포보다 무서운 것이다. 그 까닭은 다른 어떤 공포보다 몸과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안겨주기 때문이다.(It probably play more havoe with body and mind than any of the other)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느끼는 공포가 다른 공포보다 더욱 상처를 깊게 하는 까닭은 그 뒷면에 질투(Jealousy)라는 더 커다란 상처가 뒤따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내가 떠나버린 슬픔과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방법은 그에게 총각 졸업식을 베풀어 그가 가지고 있는 공포와 상처로부터 따로 떼어놓고(detachment) 그냥 떠나가게 내버려두며(Letting it go) 차라리 새로운 인연을 갖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모두 그가 겪고 있는 고통과 상처의 깊이로 보아 새로운 여자와 깊은 마음의 교감(Intimacy)을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은 그를 돌보아주는 것(Caretaking)도 용기(Courage)를 불어넣어주는 것도 아니라는 반대 의견에 동감을 표시했다.

결국 직장 동료였었던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의 세 사람은 총각 졸업식이라든가 또는 억지로 짝맞추어 주기(Unwanted match maker)같은 엉뚱한 짓들은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 자신도 일찍 아내를 잃고 방황하고 있었을 때 평생토록 한번도 장가를 가지 않았던 친구 박석희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지닌 결점-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또는 공포가 가져다 주는 또다른 공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섣불리 또다른 관계를 시작한다는 것은 일곱번째이며 가장 무서운 공포인 악마의 손길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The devil's workshop-The seventh basic fear)인데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장 부정적일 수 있는 영향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Protect yourself against negative influnces)이라고 말했다.

몇 년동안 몸담았던 ‘누가 먼저......’에서 스스로를 빠져나오게 만든 우정의 충고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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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9, 2015, 8:4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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