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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살았어도 외롭지 않았네 15, 다섯 번째 두려움, 늙어 간다는 것

한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쓸만한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차마 넘을 수 없는 고통의 산길을 걸어간 후에나 가능한 것일까?(Wisdom is usually acquired at the cost of great mountain of pain)

이제 막 감옥으로부터 풀려난 그가 두 번에 걸친 '총각 졸업식'과 '홀아비 졸업식'을 끝내 뿌리치고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를 알아맞히는 모임'의 회원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거절의 손길을 내저었을 때 모두들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내들이란 죽어가면서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찾아 헤매기 일 수이고 나머지 세 사람은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언제 숨 가쁜 목숨의 끈을 놓아버릴지 모르는 그에게 잠시나마 쾌락의 시간이라도 마련해주고 싶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는 친구들이 나름대로 생각해 건넨 도움의 손길도 뿌리친 것이 아니었던가?

사람은 죽어가면서 더욱 삶을 사실과 다른 단아하면서도 청아한 모습으로 색깔을 입히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감옥생활을 끝내고 이미 낯설어버린 속세로 다시 나왔을 때 그는 나이에 비해 훨씬 늙어보였다. 이제 갓 환갑을 지낸 사람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얼굴에는 주름살이 깊어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해버렸지만 나머지 세 사람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그의 목 언저리 목뼈가 너무나 두드러지게 드러났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뒤척일 때 마다 돌아눕는 삶을 살면서도 이 세상을 떠날 때 쯤에는 반드시 두 손을 가슴 위에 얹어놓은 채 조용하게 숨을 거두기를 원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은 시간을 아까워 여기듯 젊었을 때 미처 하지 못했던 것들을 죽기 전에 이루어내어야 한다는 안타까움 때문인지 서둘러 못해본 것들을 실험해 보기도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

그래서 고장난 것처럼 보여질 때 사람들의 마음도 피폐해지는 것일까?

'깊게 생각하고 알차게 성장하라'(Think and grow rich)는 베스트셀러 작가 나폴레옹 힐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여섯가지 두려움 가운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The fear of old age)이란 어쩌면 죽음을 앞두고 보여주기 싫은 것처럼 느끼고 있는 세 가지 요소를 거둬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나이가 들면서 사랑을 육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점차 줄어든다는데 관하여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No one cherishes the thought of diminishing sexual attraction)는 사실에 대하여 신경을 쓴다고 한다.

나이가 꽤나 들어 보이는 늙은이가 젊은 여인을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아직도 늙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험해보고 싶은 심리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젊게 살고 싶다'는 뜻은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뜻인데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겠다며 가족과 배필을 내 팽개친 채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실험' 때문에 자신마저도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두 번째로 겪게 되는 두려움 속에는 '자유스럽게 사는 길' 그러면서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독립해서 살아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점차 잃어버리게 된다는 두려움(The possibility of the lose of freedom and independence as old age)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나이 들어 경험하게 되는 이같은 두려움은 끝내는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결과(Old age may bring with it the lose of both physical and economic freedom)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게되는 가장 커다란 두려움은 자신감을 잃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은 차차 나이가 들어 몸과 마음이 쇠약해짐에 따라 열등감 내지는 자긍심을 잃어가는 경향(Tendency to develop inferiority complex and falsely believe themselves to be 'slipping' because of age)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는 나이가 들어가 그들의 경험과 지혜가 익어가면서 정신과 영혼은 오히려 보람찬 열매를 맺을 수 있음에도(The truth is that some of our most useful years, mentally and spitually in later life) 늙은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스스로 먼저 일을 꾸민다(Initialive)거나 경험과 지혜를 살린 상상력(Imagination)을 발휘한다거나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서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Self reliance)거나 하는 일들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본인에게는 억울한 죄'로 감옥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던 그가 총각, 홀아비 졸업식을 거절했었던 것도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누구나 겪게 되는 늙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누가 먼저...'의 회원들은 단순히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가 혼자서 살고 있는 그의 집으로 나머지 세 사람을 저녁상에 초대한 것이다.

아무리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정성을 다해 저녁밥을 짓는다고는 하지만 그가 상에 내어놓은 이탈리안 스파게티-특별히 마늘을 얇게 썰어 조그만 자게들과 함께 만들어 내온 국수는 정말 어떤 이탈리안 식당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받을 만큼 놀라운 맛이었다.

그것은 마치 일곱해 동안의 기나긴 이탈리아 울바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끝내고 시카고를 들렀던 박석희 주교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나버린 가정학과 출신 내 아내를 밀치고 윌멧 내 집에서 뽑낸 '혼자 사는 사람의 음식솜씨'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저녁 요리였다.

이 세상에서 나의 둘도 없는 친구라고 믿고 있었던 박석희 주교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의 천주교 본명이었던 아오스딩과 그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아퀴나스(Saint Aquinas)에 관하여 간단히 몇 마디씩 쓰기를 잊어버리지 않았었다.

나는 불행하게도 그가 왜 그토록 많은 성인 가운데서도 성 아오스딩과 성 아퀴나스에 관하여 언급했는가를 그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

'성 아오스딩의 고백록'으로 널리 알려진 아우구스티누스는 가톨릭 교회의 고해성사가 가져다주는 성인으로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성 아퀴나스 대 신학자는 그때가지만 해도 신학은 신학이며 철학은 철학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수많은 성직자들의 이분법 분석에 맞서서 신학과 철학도 하나의 똑같은 종이의 양면이라며 접목을 성공시킨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여섯가지 두려움이라는 것도 그냥 말하기 쉬운 '거리의 철학' 쯤으로 받아들여질 것이 아니라 신학과 철학을 접목시킴으로써 비로소 제 빛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밝히고 있었다.

박석희 주교는 가끔 나에게 보내준 편지를 통해 '성 아우스딩의 본명 첨례일'을 나에게 되묻도록 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친구였다.

어느날 위네카에 살고 있는 집을 찾았을 때였다. 그러니까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 혼자 남아있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라 세상을 회색빛으로만 바라고 있었을 때 그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집을 뛰쳐나와 성직자가 되자고 했을 때 나는 네가 가지고 있었던 그 순수했던 의식을 잊어 버릴 수가 없었어..."

위네카의 포레스트 드라이브(Forest drive) 길섶에 핀 들국화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너를 배신했잖아?, 너는 신부님이 되셨고 나는 속세에 살고 있는 죄인이잖아?"

길섶에 남아 버들피리를 불고 있는 나를 향해 그는 짓궂게 한마디 던졌다

"또 한번 장가를 가면 되잖아?"

나는 무슨 의민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이 둘을 기르면서 혼자서 살게 되면 더 많은 죄를 짓게 되는 법이거든"

언젠가 그가 나에게 쓴 편지 가운데 "혼자 사는 사람은 나혼자 만으로 족하다. 자네는 혼자 있으면 안돼"라고 단호하게 꾸짖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 함께 신학교를 가자고 했을 때의 어리고 순진했던 시절에는 가치관이라든가 도덕성은 때묻지 않았었다는 말이었다. 아내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을 기를 때 가져야 할 자세는 일관성(Integrity)이 있어야 하며 한때는 도덕율에 어긋나지않게 행동하고 다른때는 반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친구의 한결같았던 수도자의 삶처럼 삶을 바라보는 눈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행동들이 한결같아야한다.

또한 아이들에게 엄마 없이도 아빠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나도 엄마처럼 너희들을 책임지고 기를 수 있다(Accountability)는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그날 밤 진짜 스파게티를 이탈리안식으로 만드는 법을 나에게 밤늦도록 가르쳐 주었다

우리를 초대했던 그날 '누가 먼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감옥에서 풀려난 그가 왜 총각, 홀아비 졸업식을 거절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같았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는 책임감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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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4, 2015, 6:1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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