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IST

혼자 살았어도 외롭지 않았네 16, 죽음에 대한 두려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시카고의 겨울답게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또 한번의 거짓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일까?

모두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목도리아 털모자로 잔뜩 무장한 채 그가 이승을 떠나는 장례식에 참석했다. 설령 살아있는 목숨이라도 두꺼운 외투를 벗겨 버리면 남아있는 사람들도 땅밑으로 들어가야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은 채 세 사람은 친구의 장례식에 모였다.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를 알아맞히는 모임'의 남은 세 사람은 그가 제일 먼저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어느 할로윈이 가까웠을 무렵 각기 조상의 핏줄이 다르고 문화조차도 동떨어진 네 사람이 첫 모임을 가졌을 때만해도 인간적 도덕성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나 온화한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람,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는 남에게 떠넘기기보다 본인이 먼저 그같은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애써왔던 사람. 5시쯤 일일 끝난 후에도 쏜살같이 서류를 챙겨 사무실을 뛰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늦게까지 일하고 있던 아랫 사람들의 어려움을 다함께 풀어보려고 애썼던 사람. 누구라도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끝까지 들어주며 아픔을 같이 하려고 했던 사람.

어느 누구도 그의 따뜻한 마음씨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지닌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그가 지니고 있던 '따듯한 마음씨' 마치 남의 어려운 일도 자기 자신의 일처럼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애썼던 그의 애타심이 오히려 그의 죽음을 재촉하게 된 성격상의 결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이기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이익보다는 내가 결정한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자기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하는 문제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어떤 길이 옳고 어떤 길이 틀렸다는 가치판단(Value judgement)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떤 길을 택하든 어떻게 걸어 가느냐하는 과정의 중요성(pross)이다.

그가 이기심을 삶의 목표로 정하든 또는 이타심으로 정하든 그 길을 걸어가는데 있어서 어떤 일관성같은 것이 있느냐하는 질문이다.

인간 심리학이나 사회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다같이 제기하는 문제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결정할 때 어떤 형태의 보상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어떤 일관성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인간들 가운데는 하느님의 축복(God's grace)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이 미리 예측되어 있기 때문에 죽은 후에 하느님의 축복과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보상을 이 땅에서 받느냐 또는 나중에 받느냐하는 기준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이른바 '즉각적 보상'(Imediate reward)과 '지연된 보상'(Delayed reward)의 두 가지 행동양식으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대체로 이기적인 사람일수록 즉각적 보상을 원하며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지연된 보상을 따른다고 한다

나는 이날 땅에 묻히는 사람이 아마도 이타적인 사람이며 따라서 그는 지연된 보상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목적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의 행동에는 어떤 일관성(Continuity)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가 평소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였다 하더라도 만약 그가 한때의 욕망에 눈이 가리워 지연적 보상보다는 즉각적 보상을 원하는 행동을 했다면 그의 삶이 어떤 일관성이 있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의 평소 삶 속에 도덕성이 넘치는 것처럼 보여졌다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눈이 멀어 돈 몇푼 때문에 그의 양심을 팔았다면 그의 삶은 이타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 사이의 울타리를 제치고 편의에 따라 넘나들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행동에는 어떤 어려움을 무릎쓰고라도 한 길을 걸어가겠다는 의지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본연의 도덕적 성실성(Integrity)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필요에 따라 왔다갔다 했다는 말이다. 한 사람의 삶이 인간 본연의 도덕적 성실성이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삶의 어느 부분을 쪼개어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더라도 그릇된 잘못이 없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할 말을 잃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야말로 분명히 갈라져야 할 두 개의 철책(즉각적 보상과 지연된 보상)을 수없이 넘나들었던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사랑했었노라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 박석희 주교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서도 그는 나의 그같은 성격을 나무라기 보다는 용서하기라도 하듯 아오스딩 성인의 축일에 편지를 쓴다는 것이 늦었다며 사과하지 않았던가?

그의 사과의 편지는 한마디로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성 아오스딩의 참회록처럼 뉘우치며 살아달라는 부탁의 말이었던 셈이다.

나의 본명은 아오스딩이며 그의 본명은 이나시오였다. 두 사람에게 영세를 주셨던 독일 신부님께서는 아마도 하느님의 영광이 이미 두 사람의 구원의 가능성을 미리 짐작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아오스딩은 젊었을 때 온갖 죄악에 시달렸던 방탕아였다. 나중에 그의 모친 모니카에 의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성인으로 돌아섰었다.

반면에 이나시오 성인은 칼날이 박힌 마차 바퀴에 끌려가면서도 그가 믿고 있었던 하느님의 영광에 대하며 한줌의 의심도 품지 않았었다.

말하자면 나는 이기심과 즉각적 보상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었던데 반해 내 친구 박석희 주교는 한 평생을 이타심과 지연된 보상에 맏긴 삶이었다.

나의 삶은 필요에 따라 두 가지 보상 방법을 넘나드는 삶을 살았던데 반해 내 친구는 언제나 일관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가끔 그가 왜 그의 본명 첨례일이나 또는 휴가철에도 혼자만의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갖지 않고 내 고향 옆마을 경북 왜관읍에 자리잡은 베네딕도 수도원에 가서 침묵과 피정으로 시간을 보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난후 나중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그 해답을 알았다. 그는 혹시라도 안동교구의 가난한 농민 신자들이 그의 본명 첨례일을 축하하기 위해 없는 돈에 호주머니를 털어 주교관을 찾아오지나 않을까하고 미리 왜관 수도원으로 내려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한치도 마음을 놓지 않은 채 인간본연의 도덕적 성실성을 지키려 애썼던 셈이다.

시카고의 겨울눈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그가 묻힐 조그만 땅을 파는 인부들의 이마에도 어느듯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세월의 이끼에 낡아진 옷이 마지막 땅에 묻힐 때쯤 다 떨어져 내리는 법일까?

나는 가끔 이곳 사람들의 장례식 풍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는 의문부호를 찍어보기도 했었다.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엔 그보다 더 엄숙할 수가 없다는 듯 위아래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까지 맨 채 망자 앞에 나서서 마치 나의 잘못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양 큰 절을 두 번씩 올리는 풍습에 익숙해 있던 나로서는 마지막 영결예배가 끝난 후 포도주를 마시며 죽은 자가 살아 있었을 때 걸어간 그의 삶을 거리낌없이, 낱낱이 주고 받는 그들의 영결식 모습이 아주 어색하게 여겨졌다.

그를 떠나보내기 하루 전날 밤. 이탈리안 사람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영결미사가 끝난 후 '누가 먼저...'의 살아있는 세 사람은 그의 지나간 삶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주제는 그가 왜 모처럼 마련했던 '총각 졸업식'과 '홀아비 졸업식'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혼자 쓸쓸히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으로 돌아갔느냐?에 대한 논쟁이었다.

가까스로 하얀 미사포를 쓴 채 핼쑥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의 부인을 먼발치로 가리키며 "아마도 부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것일거야!"란 분석으로부터 시작, "아니야 어쩌면 체력적으로 여자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을 거야"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그가 그날 밤 아무런 주저없이 자리를 뜬 것에 대해 하찮은 농담들을 주고 받았었다.

"그는 암환자 였어요. 이미 때가 늦었기는 했지만..." 이튿날 장례절차가 끝나고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아가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들려주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남아있던 세 사람은 넋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마을 사람들의 페인트일을 도와주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 했었으니가요..." 그의 아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들 남아있는 세 사람이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은 그가 끝까지 가족을 책임지려 했었다(Accountbility)는 사실이었다.

"사람은 결국 죽을 때 알아보는거야" 그러니까 관뚜껑을 닫을 때까지 그 사람이 남기고간 진실한 삶의 마디마디를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사람이 지닌 도덕성이라는 것도 한결같이 지켜야 할 인간본연의 도덕적 성실성(Integrity)이라는 것도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그 사람이 남겨준 책임감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전에는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내 친구 박석희 주교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나에게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고나서 이제 나의 삶도 덤으로 사는 것같아..."라고 말했었다.

삶의 한 순간마다 덤으로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태영>게재된 글은 필자의 허락없이 무단 복제나 전재를 금합니다.

July 1, 2015, 6:24 p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