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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살았어도 19. 박석희 주교, “천상에 재물 쌓아야 한다” 강조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일세. 자네가 죄많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던 2000년에는 또한 두 사람이 처음으로 성당문을 두들겼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벽안의 지인수 신부님께서 돌아가신 해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네.

1907년 4월24일 독일 니더카셀에서 태어나서 1932년 5월13일 종신서원을 하셨던 지 신부님은 1957년 1월 어느 추운 겨울에 두 사람의 고향인 성주 본당 보좌신부님으로 부임하셨다가 이내 경상북도 가창 본당주임으로 떠나셨지. 그때 우리 두 사람은 성주 본당을 떠나던 지 신부님의 소매자락을 붙잡고 가지말라며 그토록 서운해했었잖아.

나는 사실 자네가 왜 그토록 틈만 나면 왜관에 있는 베네딕도 수도원을 자주 찾는지 내 나름대로 아전인수격 해석만 하고 있었네.

자네가 어쩌다 귀한 휴가를 얻게 되거나 또는 본명 첨례일을 맞을 때마다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을 찾는 이유가 남들 앞에서는 수도자란 수도원을 자주 찾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네. 그러나 나는 아마도 우리 둘이 신부가 되겠다고 했다가 집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왜관읍 수도원과 함께 있는 왜관 순심 고등학교로 몰래 도망갔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설거라고 나혼자 해석하고 있었지.

그러나 알고 보면 자네가 왜관 수도원을 자주 찾았던 이유가 두 사람을 가톨릭에 입문하게 했던 지 신부님을 뵙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네.

지 신부님은 두 사람이 대학에 진학한 훨씬 후인 1964년 12월 성주 본당 주임신부님으로 부임하셨다가 1980년 4월17일부터는 왜관 수도원 본원장과 1983년 3월15일 왜관 수도원 부원장직을 지나셨다는 사실을 자네가 세상을 떠난 훨씬 후에야 알고는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손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네.

자네는 아마도 저 세상에서도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두 사람이 처음으로 신부님을 만나 뵈었을 때 신부님은 독일어를 가르쳐 주고 우리는 신부님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고 제의하지 않았던가?

지금 돌이켜 보면 신부님께서는 두 사람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독일에서 건너온 천사였을 뿐 아니라 두 사람에게 독어를 가르쳐주신 세상살이 은인이었기도 했었네.

그 때 둘이 함께 다녔던 성주농업고등학교에는 독어를 가르칠 선생님이 없었을 뿐 아니라 기껏해야 일본학자가 쓴 독어 교본을 우리 말로 재번역했던 세기꾸지의 책을 통해서만 독어를 공부할 수 있었지. 그때 몇 달되지 않았지만 그가 도와준 덕분에 나는 서울의 대부분 법과 대학들이 요구하는 제2외국어 시험에 가까스로 붙을 수 있었지.

자네가 세상을 떠났던 2000년 10월보다 약 아홉달 앞선 1월25일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신부님이 떠나셨을 때 자네가 임종강론을 맡았다는 것은 꼭 자네가 했었어야 할 일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라 여기네.

그를 떠나 보내던 마지막 강론에서 자네는 "지 신부님께서는 평소 사람을 좋아하시고 욕도 잘 하는 호통한 성격을 가지셨지만 그 말씀은 남에게 욕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신부님 자신에게 한 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또 사목자이시며 동시에 수도자로 살아가신 그 분의 정신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고인의 넋을 기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마도 자네는 강론을 하면서 혼자서 웃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 스스로 죄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까닭은 사실 신부님에게 한국말로 하는 온갖 욕설을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자네가 숨겼다는 것일세.

나는 그때 신부님께 우리 말을 가장 빠르게 배우는 방법은 특유의 방언(Slang)을 배우는 것이며 사람들이 자주 쓰는 방언속에는 욕들도 들어있다며 나는 한국 욕설을 곧잘 가르쳤다. 그도 곧잘 따라 했을 뿐 아니라 신자들에게도 자주 써먹어 사람들의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든 원흉이 나였다는 사실을 자네는 그의 임종 미사강론에서 빠뜨렸었다네.

그러나 이제와서 지 신부님께 아흔 세 살이라는 천수를 누리고 가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을 서러워하는 까닭은 또다른 면모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네.

그에게 몹쓸 한국 욕을 잔뜩 가르쳐 주었던 나와는 달리 짙은 눈썹에 평소에도 말이 없었던 자네를 보고 학자같이 생겼다고 말했을 뿐아니라 성아퀴나스가 어떻게 신학이론과 철학 이론을 접목시켰으며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께서 주신 자연의 섭리야 말로 인간들이 만든 사회적 규범이나 또는 나라마다 제각기 만든 법률들을 다 껴안은 삶의 규범이라는 말에 두 사람은 생소한 깨달음을 경험했었다네.

그같은 경험을 자네는 평생토록 걸어가야할 지침으로 받아들여 나중에 이탈리아의 울바나 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조차 '성 아퀴나스의 철학에 나타난 이교도의 연구'라는 제목으로 썼었네. 그 후에도 아퀴나스의 철학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했었으며 또한 대구 성서 신학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면서도 ‘칸트의 신존재의 증명과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초월적 방법', '자아 초월 현상과 인간의 존엄성'에 관해 학문적으로 깊이 파고 들었음을 알고 있네.

또한 한국 가톨릭 주교단 정의구현의장을 역임하면서 몸으로 그 철학을 실현하고자 노력했었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네.

그뿐인가. 자네는 지인수 신부님께서 본당 신부님으로 봉직하셨던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안동교구 교구장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는 가운데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교구네 19개 사회복지 시설을 마련했고 그 가운데서도 한샘병 환자들에게 뒤뜰에서 몸소 유기농으로 기른 배추를 경운기에 싣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져 오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지.

나는 또한 자네가 1996년 7월21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일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원장 수녀가 자네에게 봉쇄 열쇠를 증정한후 수도원 축성 미사의 강론까지 담당하여 "이 집은 기도하는 집이며 기도야말로 가톨릭 교인들이 언제나 삶속에 빠지지 않고 실행해야 하는 모습"이라고 강조했었음을 전해들었네.

자네는 정말 고향을 잊지 않고 살다간 사람이네. 그러면서도 친구와 함께 숨겨진 추억들을 언제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네. 또한 내가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자네를 잊지 못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그러면서도 그런 일들을 남들에게 떠벌리지 않고 침묵으로 지켜왔다는 사실이라네. 나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떠난 사람이니까...

그러면서도 자네는 평생토록 남의 돈만 만지며 살아가는 친구의 삶을 측은하게 여기기 보다는 오히려 간결하면서도 나의 삶을 다시 반추하도록 하는 글 '애쓰지 않고 성공하는 법(재물쌓기)'이라는 강론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었다네.

"하느님으로부터

보상을 바라는 것과 또 밀접하게 연관된 생각은

하늘에다 보화를 쌓는 것이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도 있다"

(마태복음 6,19-21)

<우리는 재물을

하늘과 땅에 동시에 쌓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땅에다 재물을 쌓으면 천상에 닿는 것이 아니다.

재물을 하늘에다 쌓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지상에다 쌓을 필요가 없게된다.

지상에다 재산을 쌓는 것은

재산을 쌓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천상에다 재산을 쌓는 일은

재산을 쌓는 활동이 아니고

그것을 주어버리는 것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자선을 하는 것

아무렇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합당한 양식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헤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쓸지도 못한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루가 복음 12장33절-34절)

<자기 재물을 주어 버리는 것이

하늘에 재물 쌓는 일이 되기 위해선

그것이 나의 전체 생활양식이 되어야 한다

(마테오 복음 19장16절에)

예수께서는 젊은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였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삶이란

천상에다 재물을 쌓는 방식으로

가난한 자에게 주는 행동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곧 천상에다 재물을 쌓는 방식이다.

제자가 되는 길은 천상에다 재산을 쌓는 것인데

그것은 곧 지상에 재단 쌓는 일을 중단하는 것이다.

천상의 재산과 지상의 재산간에는

어떤 거래가 있을 수 없고

어느 것이 더 가치있고 값진 것인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천상의 재산은

더 가치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가치이며

지금까지의 가치를 바꾸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으로부터 보상을 바라는 것은

성공하게 되어있다고 하였으나

천상에 재산을 쌓는 일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다.

천상의 재산을 얻으려고 애써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아무런 지향성없이 한 행동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주어 버리는 것으로

아무 결과도 바라지 않기에 애쓰는 것이 없다.

애쓰는 것에는 지향성이 따르게 되지만

주는 것은 그 이상 무엇을 추구하지 않는다

관대하게 해주는 것은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천상보화를 자기가 준 것의 대가를 얻어내려고 하면

역시 미신적인 종교에 떨어진다.

이런 사람들은 소유에 호소하는 것이며

회개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독신생활도 천상을 얻기 위한 담보가 아니다

그냥 봉헌이고 회개의 삶이다>

"계명을 생각해서 빈곤한 이를 도와주고

그가 궁핍할 때 빈손으로 돌려 보내지 마라

형제나 친구를 위해 돈을 내주어

그 돈이 돌밑에서 녹슬지 않게 하여라

내 보화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명에 따라 내놓아라

그러면 그것이 순금보다 훨씬 이득이 되리라

네 곳간에 자선을 쌓아두어라

그것이 나를 온갖 재앙에서 구해주리라"

(참회서 29장 9절-12절)

<필요한 것 이외에는 팔아서라도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것이 교회의 정신이다.

계명대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필요한 자에게 주는 것이다.

요구하는 자에 대한 반응으로 주는 것이

천상에 재물을 쌓는 것이다.

주는 것은 그 자체가 보상이다

주는 것은 반환을 요구하지 않는다>

<박석희 주교의 피정 노트 가운데서>

그가 왜관 수도원에서 값지게 보낸 피정 노트는 누구에게나 주고 싶었던 내용이었지만 아마도 그는 이 노트를 마련하면서 멀리 시카고에서 오늘도 남의 돈을 헤아리고 있을 죽마고우를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그의 노트는 그가 세상을 떠난지 열다섯해가 흐른 지금 유언처럼 내 가슴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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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7, 2015, 12:5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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