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IST

혼자 살았어도 외롭지 않았네 20. 마지막 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었고 아꼈던 친구 박석희 주교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튿날 새벽길-

나는 그날도 새벽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 슬픔을 이겨내야 한다. 평소보다 두 배의 달리기라도 끝마쳐 온 몸을 땀으로 흠뻑 젖게 하고 싶은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내가 살고 있는 위네카 마을-내 집 앞길 세리단길을 따라 북쪽으로 달려가다 보면 시카고 지역에서는 만나기 힘든 언덕 정상인 타워(Tower Road)길을 만나게 된다.

아래쪽 미시간 호수로 내려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기 때문에 당뇨병을 앓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안성맞춤인 달리기 코스다.

새벽 가을 호수는 나의 허망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파도조차 일렁이지 않고 있었다.

그날 새벽에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보다 먼저 나와 있었다.

"아주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언제나처럼 간단한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왠일인가. 그날 아침따라 할아버지는 느린 속도로 모래사장을 향해 달리고 있던 나를 잠시 불러 세웠다.

"너무 무리하는 것아닌가?" 모래사장 입구를 막 들여서려는 나를 할아버지가 말을 건네왔다.

그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첫말을 건넸다.

"맨발로 뛰는 것이 좋다고들 해서요..." 그러고 보니 운동화도 양말도 벗어던진채 모래 사장 앞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가끔 발밑에 밟히는 조약돌들이 발바닥을 매섭도록 차갑게 때려주는 것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오늘 아침따라 더없이 맑은 가을 하늘 아래서 모래 사장 위로 내 발걸음의 무늬를 남긴다는 것도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닌 것같았다.

"네 너무 무리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대답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아침마다 달리기를 한다는 것-그것도 한주일에 일요일만 빼고 6번을 달린다는 것이 나이에 비해 무리를 하고 있다고 자신에게 가끔 되묻기도 했었다.

내 나이 환갑이면 한국에서는 이미 은퇴를 했어야 했다. 가끔 서울서 들려 이미 손자 손녀들의 재롱에 물들어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왜 그렇게 욕심이 많으냐" 핀잔을 들어야 했다.

사실 남자 나이 환갑이되면 욕심을 거둘 시기다. "왜 내 나이가 어때서"가 아니라 "이 나이에 그러면 안되지"하고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할 나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달리기를 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욕심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같다.

그 무렵 나는 시카고 지역의 모 금융그룹 수석 부회장(Executive Vice President)직을 맡고 있었다. 흔히들 지주회사라고 알려진 금융그룹은 그 아래 12개의 지역은행과 98개의 지점망을 갖춘 비교적 큰 금융그룹이었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건너와서 남의 나라에서 그것도 주류사회의 금융그룹 수석 부사장쯤 되었으면 그보다 더한 욕심은 버렸어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보다 더한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 무렵 인간들의 욕심을 부추기는 '최고 경영자가 되는 길'의 꽤많은 서적들은 다음과 같은 교과서적인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첫째, 건강한 신체조건(Phisically balanced)을 갖추어야 하며 둘째 건전한 재정적 뒷받침(Financially discipline)을 마련해야 하며 셋째 도덕적으로 나무랄데 없이 무장되어 있어야(Morally equipped)한다는 조건들이었다.

한 마디로 그 어려운 사다리를 딛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사실 사다리를 딛고 올라선다는 것도 어쩌면 첫 번째 조건보다도 셋째 조건이 더 중요한 것인데도 말이다.

사다리의 밑받침이 든든한 땅위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마치 모래 사장의 누각처럼 와라락 무너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지팡이를 짚고 모래 사장을 몇발짝 앞으로 걸어가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주둥이가 제법 큼지막한 유리병을 들도 있던 그의 아내로부터 그 병을 낚아챈 뒤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그의 바지 주머니속에 숨겨져 있던 골프공 4개를 꺼내어 병속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그 병이 비교적 작은 탓이었던지 골프공 4개를 넣고 난 후에는 제법 꽉 차 보였다.

그 할아버지는 그 병을 오른 손으로 높이 들어보이면서 "다 찬 것같으냐?"고 첫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제일 먼저 꽉 찬 것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허리를 굽혀 모래사장에 흩어져 있던 조약독들을 집어 골프공 사이로 비어있던 공간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또다시 병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다 찬 것같으냐?"고 질문했다.

나는 또 제일 먼저 꽉 찬 것같다고 대답했다. 그 할아버지는 첫 질문을 던졌을 때 골프공 사이로 빈자리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채 꽉 찬 것같다고 어리석은 대답을 한 잘못을 채 깨닫기도 전에 또다시 두 번째 질문에도 똑같은 대답을 해버린 셈이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또다시 허리를 굽혀 모래 사장의 모래들을 그 유리병에 담기 시작했다. 내가 정확하게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꽤나 많은 양의 모래들이 그 병을 꽉 채우고 있었다.

"꽉 찬 것같으냐?" 세 번째 질문이었다. 나는 또한번 더 꽉 찬 것같다고 대답했다.

모래를 집어넣어 빈자리를 다 메꾸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꽉 찬 것같다며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끝으로 다가가서 호수의 물을 병속에 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까지는 미리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물이 병안으로 들어가면서 모래색깔도 조약돌 색깔도 그리고 심지어는 골프공 색깔도 변해가고 있었다.

마치 바다깊이 넓게만 보이는 미시간 호수의 먼 지평선 넘으로 장렬한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리병 속에 담겨진 것들도 아침 해의 붉은 색깔에 영향받아 여러 가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다 찬 것 같으냐?" 할아버지는 네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제서야 잠자코 곁에서 웃고만 있던 할머니가 머리를 끄덕이며 한 마디 거들었다.

"물을 먼저 붓고 다른 것들을 나중에 넣게되면 유리병이 깨질 수도 있는 거죠"

그렇다 삶의 우선 순위를 정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무겁고 어려운 일들부터 먼저 처리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젊어서나 나이가 들어서나 인생의 우선 순위를 따라 살아야 하는 법인데 나는 도덕적 무장도 재정적 독립도 이루지 못한채 건강한 육체만을 위해 달리기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를 갑자기 불러세운 그 할아버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갈색 봉투에 들어있던 빵 부스러기와 땅콩들을 꺼집어내어 공중으로 던지는 일을 반복했다.

이른 새벽 미시간 호수의 잔잔한 물결위를 날고 있던 갈매기들이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 머리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갈매기와 비둘기들은 경쟁을 하지 않는 평화의 상징이죠..." 갑자기 먹이를 주워 먹으러 할아버지의 머리위를 넘나드는 그들에 비유하며 경쟁사회에서는 무엇이 되겠다며 오늘 아침에도 모래 사장위를 열심히 달릴 내가 가엽다는 듯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다 끝낸 갈매기들이 지평선 끝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할아버지도 이제 아침에 해야할 일들이 끝난 것처럼 모래사장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삶의 우선 순위란 정말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일까? 아주 쉽사리 빈병을 채울려면 물이라든가 모래알들을 가득 넣게 되면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중에 하찮은 것들을 주워 담을 수 있는 자리를 남겨놓는 한이 있더라도 금방 마음에 차지 않을 수도 있는 공이라든가 조약돌을 먼저 채움으로써 잔잔한 꿈이나 욕망들을 나중에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남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까?'라는 질문은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더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날 새벽 미시간 호수변에서 '빈병 채우기' 교훈을 일러준 노부부는 아직도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더듬고 있는 나에게 이미 고인이 된 내 친구 박석희 주교가 나타난 것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사실 그 무렵에 당신이 '덜 존재할수록' 그리고 당신의 삶을 '덜 표출할수록' 당신은 그만큼 '더많이 소유하게 되며 당신의 소외된 삶은 그만큼 더 커진다'는 말을 되씹고 있었다.

그리고 또 나는 구약성서의 가장 긴요한 테마 중 하나인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모든 속박으로부터 너 자신을 해방하라"는 말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내 사랑하던 친구를 저 세상으로 보낸 후 내가 참으로 깨달아야 할 사실은 '인간은 자신을 위해 살아서도 진리를 위해서 살아서도 그리고 또 신을 위해서 살지도 않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해서도 탐욕을 가지지 않는 인간이란 '무엇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기 보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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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7, 2015, 2:0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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